지난주 그림일기가 엘리의 일본어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제 프랑스어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엘리는 단순히 일본어가 귀엽게 생겨서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프랑스어는 딱히 귀엽게 생기지는 않았어요. 어린이 시절부터 지겹도록 공부해온 알파벳 몇 개에 점이나 꼬랑지가 붙어있는 정도? 그럼 어쩌다 공부하게 되었느냐…아시다시피 제가 먹는 걸 참 좋아하잖아요? 프랑스어 역시 먹는 것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혼자 밥을 차려먹을 때가 종종 있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부터는 혼자 밥을 ‘차려먹는’ 것에서 ‘만들어먹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불’을 다루기 시작한 거죠! 제가 기억하는 제가 만든 첫 요리는 참치 김치 볶음밥이에요.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얻어먹은 참치 김치 볶음밥이 너무 맛있는 거예요. 저는 김치 볶음밥에 참치가 들어갈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집에서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참치캔을 따다가 엄지 손가락이 크게 베였는데, 그때는 혼자서 요리하다가 다쳤다는 사실을 엄마가 알면 괜히 혼날까봐 엄청 아프고 놀랐지만 허둥지둥 손가락을 감췄던 기억도 나네요. 어쨌든 저의 첫 요리, 참치 김치 볶음밥은 친구네서 처음 먹었을 때의 감동 만큼은 아니었지만 꽤 먹을만 했습니다. 다음에는 더 맛있게 만들고 싶었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때 이후로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로 만들 수 있는 요리를 하나둘씩 시도해봤어요. 네이버 블로그에서 만들어 보고싶은 온갖 레시피를 인쇄해서 레시피 스크랩북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요리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콘텐츠도 요리와 관련된 것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해외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언니를 따라 TV로 해외 프로그램을 자주 보고는 했는데 그 와중에 고든 램지가 나오는 헬스키친,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 프로그램도 챙겨봤습니다. 중학교 때는 ‘파스타’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파스타만 주구장창 만들기도 했어요. “봉골레 하나!”를 크게 외치며 화만 잔뜩 내는 이선균 배우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저에게는 안에는 칼, 불처럼 위험이 도사리고(?), 밖에는 예민할 수 밖에 없는 배고픈 상태의 손님들이 기다리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는 ‘셰프’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끼게 해준 드라마였어요.

  ‘셰프’라는 직업을 고민하면서 요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어찌된 일인지 ‘프랑스’라는 나라를 자주 접하게 되었어요. 미식의 나라,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인 르꼬르동블루의 나라, 저명한 미식 매거진 미슐랭 가이드의 나라, 요리를 학문으로서 파고파다 나온 듯한 분자요리가 시작된 나라, 심지어는 제가 되고싶어했던 ‘Chef’ 라는 단어조차 프랑스어에요. 그렇게 프랑스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자연스럽게 제 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선택했습니다.

  이미 모두가 교육과정을 따라 9년간 공부해왔기 때문에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편차가 분명하고, 그래서 못하는 쪽에 속하지 않으려고 바짝 긴장했던 영어 수업과 달리 모두가 초보인 프랑스어 수업은 마음이 편했어요. 이미 알고 있는 알파벳과 비슷한 생김새인데, ‘O’와 ‘L’이 많이 등장해서인지 어딘가 우아한 발음이 낭만 가득한 프랑스에 대한 이미지에 찰떡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니던 고등학교가 학구열이 높았던 학교라 호통치는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철없는 여고생들이 짖궂은 장난을 치거나 입시에 중요한 과목이 아니라며 대놓고 잠을 자더라도 느릿느릿 우아하게 달래듯 이야기하시는 프랑스어 선생님조차도 프랑스에 대한 제 로망에 불을 지펴주었습니다.

  어떤 학문이든 입문은 쉽고, 빠르게 실력이 느는 듯한 느낌이 들기 마련이잖아요. 프랑스어도 그랬습니다. 이대로 가면 제가 프랑스어를 마스터하는 건 순식간일 것 같았어요. 그때 결정했습니다. 나는 르 꼬르동 블루에 가서 요리를 배우고 셰프가 되어야 겠다! 그때쯤 너무 재밌어서 적어도 10번은 넘게 돌려본 ‘줄리 & 줄리아’라는 영화의 주인공이 다닌 학교인 것도 한 몫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호기롭게 이야기했습니다. 대학을 가지 않고 프랑스에 요리를 배우러 가겠다고!

  결과는 다소 뻔했습니다. 꿈을 존중하지만 일단 대학교는 가라던 부모님의 말씀에 못내 입술을 삐죽이며 차선책으로 프랑스어를 더 공부하기로 했어요. 프랑스에서 가서 생활하려면 언어를 먼저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죠. 대학교에서 공부하며 실력이 확실히 늘기는 했지만 여전히 어떻게 해서든 프랑스어와 요리를 함께 경험하고 싶었던 저는 기어코 서래마을이라는 프랑스인이 많이 살고있는 동네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인을 많이 만날 수 있는 레스토랑에서 일한다니! 두근거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주방과는 연이 없는 웨이트리스로 일하게 된 것에 못내 아쉬웠습니다. 요리 경력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죠 뭐.

  그런데 레스토랑에서 일하면 일할수록 셰프라는 직업에 대한 꿈이 흐릿해졌습니다. 오히려 웨이트리스로 있으면서 경험하는 것들에 더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때 제가 봤던 셰프님은 좁고 더운 주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계속해서 똑같은 요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손님이 어떤 표정으로 먹는지, 얼마나 잘 먹는지, 얼마나 맛있어 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건 웨이트리스였어요. 홀을 담당하며 테이블 세팅하는 법, 와인 보틀 따는 법, 잔에 따르는 법, 와인 시음법을 배우기도 하고, 무엇보다 프랑스인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던 게 가장 큰 매력이었어요.(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저를 유난히 반가워하며 팁을 준 것도 너무 좋았어요 하하)

여러분도 배워보고 싶은 언어가 있나요? 혹시 프랑스어는 어때요? ‘나 프랑스어 좀 알아!’ 라고 뻐길 수 있는 정도(=저)까지 되기는 어렵지 않답니다. 이 글을 받은 지 얼마 안된 시점에 읽으셨다면 잠들 시간이겠네요. 프랑스어 이야기를 주구장창 했으니 인사 정도는 프랑스어로 해봅니다.

Bonne nuit ! 🌝

P.S. 참, 저는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마라톤 대회에서 목표를 달성했어요. 6km를 39분에 완주했습니다. 심지어는 6km 여성 중에는 4등도 했다구요? 아마도 잘하는 분들은 12km 부문에 몰려서 그런 것 같지만...어쨌든 뿌듯하고 여러분께도 자랑하고 싶었어요. 내년에는 10km를 도전해볼까 합니다. 이제 날씨가 추워졌는데 어떻게 달리려나 싶으신가요? 우리에겐 모자와 장갑이 있잖아요? 달려달려~~~🏃‍♀️